조선, 개항기의 정동

Jeongdong, the Strange Coexistence

현재 덕수궁을 포함하여 정동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조선 초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정릉을 이곳으로 정하면서 형성된 것입니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궁궐이 모두 훼손되었을 때 한양으로 돌아온 선조는 정릉동 월산대군의 저택에 행궁을 마련하여 머물렀습니다. 이후 점차 행궁이 확장ㆍ정비 되면서 궁궐로서의 위상을 갖추어 나아갔으며, 광해군은 정릉동 행궁의 서청에서 즉위하였습니다.

광해군 3년에 이르러 임금은 ‘창덕궁’으로 이어하였는데, 행궁은 ‘경운궁’이라는 정식 궁호를 얻어서 이궁으로의 위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인조 이후에 새문동에 세워진 ‘경희궁’이 이궁으로 사용되면서 궁궐의 위상은 사라지고 ‘명례궁’으로 불려졌습니다. 이 때문에 조선후기 지도에는 경운궁이 대개 ‘명례궁’이라고 표시되어 있습니다. 개항 이후, 1882년 미국공사관을 필두로 정동에는 하나둘씩 외국공사관들이 들어서기 시작하였고, 서울의 양인촌으로 새롭게 변화되었습니다.

1883년 미국공사관이 설치된 것을 필두로 정동지역에는 서양 각국의 공사관이 건립되었습니다. 영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 등이 정동에 자리를 확보하여 공사관을 건축하였는데, 이중 미국만은 원래의 한옥을 개조하여 사용하였고, 영국, 러시아, 프랑스 등은 본국의 위엄을 드러내기 위하여 장중한 서양식 건축물을 지었습니다. 이러한 공관을 중심으로 한 서양식 건축물들은 정동을 이국적인 분위기로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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